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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 - 실천윤리학
- 1강 왜 공리주의인가?
- 2강 효율적 이타주의
- 3강 동물 해방: 이론편
- 4강 동물 해방: 실전편
- 5강 어떻게 살 것인가
1강 왜 공리주의인가?#
무엇이 옳은 것일까요?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요?
공리주의(Utilitarianism)에서는 이렇게 답해요. "옳음이란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선택 중 최선의 결과를 낳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말해요.
그 최선의 결과는 나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돼요. 행동에 영향을 받는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해요. 모두란 현재는 물론이고 고려할 수 있는 미래의 사람까지 모두 포함돼요.
공리주의는 일반 도덕 규칙을 따르는 게 때론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어요.
하지만 특이한 상황이 발생해 그 규칙이 최선의 결과를 낳지 못한다면 공리주의는 그 규칙을 따르지 말라고 말할 거예요.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 설명하는 수많은 윤리 이론이 있지만 전 그중에서도 공리주의가 최선이자 또 가장 옹호할만한 윤리 이론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실제 상황에 부딪혀 결정을 내릴 때는 최선의 결과를 낳는 선택을 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긴급한 상황이 닥치면 절대적인 규칙을 따를 수 없다는 거죠. 전 우리가 공리주의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윤리관의 경우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실제로 적용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그런 상황에서는 기존의 규칙을 따르는 게 더 많은 고통과 불행을 낳을 수도 있어요. 또 저는 공리주의가 현실적이라서 좋아요.
공리주의 목표는 행복을 최대화하고 고통은 최소화하는 거예요. 공리주의자는 바로 그런 목표를 실현하기를 원해요. 또 그렇게 하는 게 옳은 일이고 선이라고 생각하죠. 공리주의자는 행복과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에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공리주의는 말해요. 우리 자신만 고려할 게 아니라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를 고려하자고 말이에요.
1강 강의 정리#
공리주의: 옳음이란 최선의 결과를 낳는 선택. 최선의 결과란 미래를 포함한 모두를 위한 것
공리주의 반론: 칸트의 의무론. 행위 결과가 아닌 동기가 중요. 사람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
공리주의가 옳은 이유
- 행복을 최대화, 고통은 최소화
- 공리주의자의 관심 ->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
-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면 모두가 동등
- 원칙을 선과 악으로 평가하지 않음
- 긴급한 상황에서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윤리관
2강 효율적 이타주의#
이번 강의에서는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를 이야기해 볼게요.
넓은 의미에서 효율적 이타주의는 철학이에요.
이타주의(利他主義, altruism) 또는 '이타성'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주의로, 행동의 목적을 타인에 대한 행복에 둔다는 것으로, 남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주의와 반대된다.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갈 때 지침이 되어주는 삶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죠. 또한 효율적 이타주의는 사회 운동이기도 해요.
효율적 이타주의의 밑바탕이 되는 생각이 있어요. 바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게 우리 삶의 목표 중 하나가 돼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타주의'라는 이름이 붙은 거예요.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부분에서 효율성을 추구해요.
시간도 효율적으로 돈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 해요.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우린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나
특정한 대의를 위해서는 자원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되는지 생각하지 않아요.
약간의 비용과 불편만 감수하면 아이를 구할 수 있잖아?
좋은 일을 했으니 뿌듯하기도 할 테고 아이를 구했다면 정말 좋은 일을 한 거예요.
전 여러분이 아이를 구했으면 좋겠어요. 또 대부분 아이를 구할 거라고 믿어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구할 수 있다면 다른 나라에서 죽어가는 아이들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해요.
눈앞에 있는 아이의 생명과 멀리 있는 아이의 생명에는 대체 어떤 차이가 있나요?
당장 눈앞에 있는 아이를 구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멀리 있는 아이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할 건가요?
저는 둘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아이의 생명이든요.
두 아이 모두 내게 낯선 타인입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의 생명은 똑같이 귀하고 똑같이 중요하죠.
물론 심리적인 요인이 있다는 것은 저도 이해해요. 멀리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아이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게 당연해요. 그건 인간의 심리적 특성입니다.
인간의 본성이자 인간의 기질이고요. 가까운 사람에게는 연민을 느끼고 낯선 사람에게는 연민을 잘 느끼지 못해요.
하지만 효율적 이타주의 운동은 이렇게 주장해요. 우리에게 그런 특성이 있더라도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타인을 도와야 한다고요.
그리고 그 방식이 먼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돕는 거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해요.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을 신경 써야 해요.
그게 바로 효율적 이타주의 운동이 저소득 국가 사람들을 돕는 데 중점을 두는 이유예요. 훨씬 더 유용한 도움을 줄 수 있거든요.
연간 750달러를 버는 사람에게 1천 달러를 준다면 그 사람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거예요.
여러분이 효율적 이타주의자가 된다면 삶에서 더 큰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전 효율적 이타주의자가 되는 게 삶을 희생하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이 이 세상과 많은 사람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면 커다란 성취감을 느낄 거예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더 많은 물건을 사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을 돕는 게 훨씬 만족스럽고 보람찬 일이에요.
2강 강의 정리#
효율적 이타주의
- 인생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삶의 철학
- 이타적인 행동도 효율적으로 사고
- 소비할 때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더 행복
- 이타적 행동을 할 때 효율성을 생각하지 않음
효율적 이타주의 운동
-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사회적 운동
- 이타적인 행동도 효율적으로 바꾸자는 운동
극빈곤선(Extream poverty line):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
전 세계 7-8억명, 극빈곤선 이하 소득으로 생활
효율적 이타주의가 되면 삶의 만족도 상승!
- 나만을 위한 소비가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소비
- 같은 비용이라면 남을 돕는 것이 성취감과 만족감이 더 크다
3강 동물 해방: 이론편#
이번 강의에서는 동물 윤리(ethics)에 관해 이야기해 볼 거예요.
인간과 동물의 도덕적 차이가 뭘까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서 도덕적으로 중요한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를 나눌 수 있을까요?
어떤 존재를 하찮게 여기고 어떤 존재를 보호해야 할까요?
나치 독일이 그런 잔혹한 만행을 저지른 후 전 세계 모든 국가는 세계 인권 선언에 서명했어요.
모든 인간에게는 권리가 있고 이를 보호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죠.
이 선언은 인간이 자신의 발전을 위해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정신적 사실에 기초해요.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해요. 이건 분명 커다란 발전이에요.
왜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일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종들은 누리지 못하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걸까요?
어떤 종의 일원이라는 게 왜 그렇게 특별할까요?
종차별과 과거의 인종차별이 정말 다른가요?
종이라는 기준으로 인간과 동물을 나눠 차별하는 걸 무엇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제러미 벤담은 이런 질문을 던졌죠.
뛰어넘을 수 없는 경계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이 경계선은 도덕적 권리를 부여하는 기준을 의미해요.
태어난 지 일주일이나 한 달 된 아기는 동물보다 말을 더 잘하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아요. 오히려 동물보다 못해요.
제러미 벤담은 이렇게 말했어요.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사유 능력이나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고통을 느낄 수 있느냐?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동물에게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인간과 동물처럼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존재는 도덕적 지위가 있고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거예요.
3강 강의 정리#
인간과 동물을 차별하는 도덕적 기준 -> 이성은 도덕적 지위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살아있는 존재: 인간, 동물, 식물
인간: 지각능력이 있고, 성장 가능. 복잡하고 지적인 삶, 윤리적 판단이 가능
동물: 지각능력이 있고, 성장 가능.
식물: 지각능력이 부재
이마누엘 칸트: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동물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해야 한다.
제러미 벤담: 사유 능력이나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고통을 느낄 수 있느냐가 기준.
동물 해방을 해야 하는 이유
- 도덕적 지위를 부정할 근거가 없다
- 지각있는 존재는 모두 동등하다
4강 동물 해방: 실전편#
왜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종이 가지지 못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걸까요?
어느 동물이 고통을 느끼냐고요. 척추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척추동물은 우리와 비슷한 신경계를 가지고 있어요.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고통에 반응하죠. 또한 일부 무척추동물도 고통을 느껴요.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방식을 살펴볼까요? 제가 보기에 우리는 동물의 고통과 행복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요.
인간의 고통과 행복만큼 무게를 두진 않는 게 분명해요.
때로는 아주 끔찍한 고통을 동물에게 안겨 주기도 해요. 인간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된다면 말이죠.
동물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기는 곳은 바로 축산업계예요.
이 모든 게 싼 가격에 더 많은 고기나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서죠.
우리 인간들은 동물 수백억 마리의 행복을 빼앗고 그들의 삶을 희생시켜요.
우리가 동물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하는 건 단지 더 저렴하게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예요.
우리가 육식을 중단하고 대신 채식과 곡식의 섭취를 늘리면 모든 면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란 내용의 논문이 '랜싯'이라는 저명한 의학 저널에 실려있어요. 그렇게 하는 게 우리 건강에도 좋고 지구에도 더 좋다고 해요. 왜냐하면 축산업은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니까요.
동물해방에 대해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동물 착취를 멈추자는 거였죠.
처음엔 사람들이 비웃었어요. 하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제 의견을 지지하기 시작했어요.
의견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그 점에서 우린 꾸준히 진전을 이룬 셈이죠. 동물에 대한 염려가 늘었고 동물에 대한 존중이 늘었고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됐으니까요.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종이 가질 수 없는 권리나 도덕적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해요.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거부하듯이, 종차별도 거부해야 해요.
먹거리에 신경 쓰고 먹거리를 윤리적으로 선택하세요.
그렇게 한다면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관습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이제는 그 관습에서 벗어날 때가 됐어요.
4강 강의 정리#
고통을 느낄 수 있기에 동물과 인간은 동등하다.
동물의 고통스러운 삶은 인간의 더 싼 제품을 위한 것이다.
특히 공장식 축산 동물의 고통을 줄여야 한다.
축산업은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다. (전체 14.5%~18%)
- 동물 윤리를 위해 공장식 축산 제품은 사용하지 않는다.
- 동물성 식품 섭취를 완전히 줄여야 함
- 공장식 축산업을 배양육으로 대체
5강 어떻게 살 것인가#
이번 강의에서는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철학자로서 저희는 좋은 삶을 이루는 근간을 깊게 탐구하는 데 더 관심을 둬요.
좋은 삶이란 그저 개별 요소들을 더한 걸까요?
아니면 개별 요소 아래에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핵심이 존재하는 걸까요?
'완전론'을 말해볼게요. 인간의 본성을 개발해야 한다는 이론이에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어요.
덕이 있는 삶은 인간의 본성에 따르는 삶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우리가 그 본성을 갈고닦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어요. 과연 우리 본성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리 본성의 모든 요소가 마치 재능처럼 갈고닦을 만한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인간 본성에 대한 찰스 다윈의 이론은 상당히 과학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어요.
그 이론에 따르면 우리 본성이 지금처럼 진화한 건 그 본성 덕분에 우리 조상들이 살아남았기 때문이에요.
자손이 생존할 수 있게 한 본성이죠. 그런데 인간의 본성은 덕과는 정반대로 선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다만 우리 본성에는 선한 요소도 있고 악한 요소도 있기 때문에 더 나은 방향으로 노력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욕구 충족 이론'은 어떨까요? 욕구를 충족하는 게 좋은 삶이라는 이론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뭘 원하는지 알아요. 원하는 걸 얻으면 우리는 행복해져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좌절하거나 불행해지고요.
이번에는 '쾌락주의'를 말해볼게요. 쾌락주의는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은 쾌락이나 행복을 최대화하고 고통은 최소화하는 거란 입장이에요. 우리 모두 불행하기보다는 행복해지길 원하고 행복은 좋은 삶에서 중요한 요소니까요.
쾌락주의를 비판한 철학자 로버트 노직은 이렇게 말했어요. 경험 기계(머리에 연결된 전극을 통해 이 모든 걸 경험할 수 있음) 안에서 평생을 보내는 게 최고의 삶이라고요.
많은 사람이 노직의 경험 기계가 쾌락주의에 회심의 일격을 날린 반박이라고 하지만 저는 동의하기 힘들어요. 쾌락주의는 여전히 옹호할 만한 이론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한 가지 지적하고 싶어요. 단지 물질적인 생활 수준이 높을수록 행복한 삶은 아니란 사실이죠. 더 많은 물건을 사는 게 행복한 삶은 아니에요.
더 지속적인 만족과 성취감을 얻을 방법이 있어요. 바로 우리 자신이 지닌 가치를 따르는 삶을 살면서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이에요.
자기 자신을 위해 돈을 쓴 그룹보다 타인을 돕거나 타인을 위해 돈을 쓴 그룹이 더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고 답한 연구 결과가 있어요.
쾌락주의의 역설이라는 게 있어요. 쾌락주의의 역설이란 직접적으로 쾌락을 얻으려 하면 실패한다는 거죠.
반면 여러분이 다른 곳에 목표를 둔다면 이를테면 타인을 행복하게 한다거나 내가 가진 기술을 갈고닦는다거나 혹은 게임을 할 때도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게임 자체를 즐긴다면 행복을 얻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거죠.
따라서 여러분의 최종 목표가 행복이라고 하더라도 행복을 직접적으로는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게 좋아요.
5강 강의 정리#
완전론: 공격성과 같은 인간 본성은 선하지 않을 수 있다.
욕구 충족 이론: 모든 욕구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
쾌락주의: 직접적 방식으로는 쾌락,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셋 다 좋은 삶의 이론이 아니다.
물질적 생활 수준이 높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소비는 일시적이며 지속적인 행복을 안겨주지 않는다.
지속적인 만족감을 얻는 법
- 가치에 따르는 삶
- 가치를 공유하는 친구와의 교류
진정한 행복을 얻을 방법: 행복 자체를 추구하기보다는 목표의 가치에 주목
I'm a great believer in luck and I find the harder I work, the more I have of it.
— Thomas Jeffer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