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하면, 저도 이런 질문을 품은 적이 있어요.
은둔·고립 청년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생각이 먼저 들잖아요. 집에서 유튜브 보고, 릴스 넘기고, 게임하고, 웹툰 정주행하고. 배가 고프면 배달을 시키고, 필요한 건 쿠팡으로 받고. 이제는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웬만한 생활이 다 되는 세상이니까요. 세상이 그만큼 좋아진 거죠.
그러다 보면 생각이 이런 데까지 흘러가요. 자기만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걸 최대한 자유롭게 하고 있는 사람을 왜 굳이 "우울하고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봐야 하지? 돈을 안 벌어서? 요즘은 게임 안에서 돈을 버는 사람도 있는데. 오히려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그 사람이 지금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막고, 생활을 통째로 바꾸려는 거 아닌가?
부끄럽지만 저는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적이 있어요. 그리고 이 질문은, 아마 많은 사람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 속으로는 한 번쯤 해봤을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서울청년기지개센터에 다녀왔어요. 그러고 나서 질문이 조금 바뀌었어요.
"집에서도 살 만해진 것"이 위로가 아닐 수도 있어요#
가장 먼저 흔들린 건 "세상이 좋아져서 집에서도 살 만하잖아"라는 전제였어요.
맞아요. 배달앱, 스트리밍, 게임, 온라인 쇼핑. 예전 같으면 밖에 나가야만 해결됐던 일들이 이제 문 안에서 다 끝나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예전에 사람을 다시 세상으로 끌어내던 건 대단한 계기가 아니었어요. 밥을 사러 나가다 마주친 편의점 알바, 물건을 사며 나눈 몇 마디,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던 사소한 마찰들. 그런 작은 접촉들이 사람을 계속 세상에 붙들어 두고 있었던 거예요.
기술은 그 마찰을 전부 없앴어요. 편리해진 거죠. 그런데 같은 이유로, 이제는 누군가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져도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됐어요. 굶지도 않고, 크게 불편하지도 않게. 죽지 않고도 사라질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래서 "집에서도 살 만해졌다"는 말은, 이제 저한테는 위로처럼 안 들려요. 오히려 가장 조용한 위험 신호처럼 들려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착시#
두 번째로 걸린 건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하는 건데 왜 막냐"는 부분이었어요.
이 논리에는 사실 제가 놓친 구멍이 하나 있었어요. 은둔·고립을 이야기할 때 거의 빠지지 않는 말이 있거든요. 본인들도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안다는 거예요.
여기서 앞뒤가 안 맞아요. 정말 자유로운 선택이라면, 이러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 이유가 없잖아요. 나오고 싶은데 나올 방법을 잃은 상태, 매일 "내일은 다르게 살아야지" 하면서 그 문턱을 못 넘는 상태. 그건 자유가 아니라 갇힘에 가까워요.
그러니까 정확히는,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남지 않은 거예요. 선택지가 하나로 줄어든 걸 두고 "자유"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거였어요.
'내부 노숙자'라는 말을 다시 읽으면#
한때 저는 은둔 청년을 '내부 노숙자' 같은 거라고 삐딱하게 생각한 적도 있어요. 집 안에 있을 뿐, 사회에서 떨어져 나온 건 비슷하지 않냐고요.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오히려 핵심이 보여요. 노숙자는 집을 잃은 사람이에요. 은둔 청년은 집은 있는데 문 밖의 세상을 잃은 사람이고요. 잃어버린 게 달라 보이지만, 결국 둘 다 잃은 건 같아요. 세상과의 연결이요.
노숙자에게 필요한 게 비난이 아니라 다시 몸 누일 자리이듯, 은둔 청년에게 필요한 것도 "왜 그러고 사냐"는 낙인이 아니라 다시 이어질 자리예요. 사실 낙인이 문제라는 처음의 제 생각은 반쯤은 맞았어요. 도와줘야 할 불쌍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순간, 나오기가 더 어려워지거든요. 다만 낙인을 걷어낸 자리에 필요한 건 방치가 아니라 열린 문이었어요. 방향이 틀렸을 뿐이에요.
그래서 '돕는다'는 건#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볼게요. "왜 도와줘야 하냐, 강제로 생활을 바꾸는 거 아니냐."
기지개센터에서 제가 본 건 누군가를 억지로 끌어내는 모습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반대였어요. 기지개라는 이름부터가 그래요. 기지개는 남이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게 아니잖아요. 잠에서 깰 때, 자기 몸이 준비됐을 때 스스로 켜는 거예요. 옆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때까지 방을 너무 춥지 않게 해두고, 깼을 때 나올 수 있는 문을 열어두는 정도예요.
돕는다는 건 그 사람의 지금을 부정하고 뜯어고치는 게 아니었어요. 나오고 싶어졌을 때 나올 다리를 놓아두는 것, 돌아올 자리를 비워두는 것. 그게 도움이었어요.
그리고 이건 은둔·고립 청년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한때 "왜 도와줘야 하냐"고 물었던 저 같은 사람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우리가 조금 덜 낙인찍고, 자리를 조금 더 비워두면. 지금 문 안에 있는 누군가는, 자기가 준비됐을 때 그 문이 아직 열려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요.
집이 있는데 갈 곳이 없다는 건, 갈 곳을 영영 잃었다는 뜻이 아니에요. 아직 그 문을 안 열었을 뿐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그 문을 대신 부수는 게 아니라, 잠그지 않고 두는 거예요.
Without some goals and some efforts to reach it, no man can live.
— John Dew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