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에 블로그를 다시 만들겠다고 적은 메모가 하나 있어요. 그땐 "어떤 화면이 필요할까", "어떤 라이브러리를 쓸까"부터 적었어요. Home, Series, Tags, Books, Links, About — 화면 목록을 먼저 세우고, 뉴스레터와 댓글 기능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죠.
3년이 지나 다시 보니, 그땐 기능을 먼저 그리고 정보는 나중에 채우려고 했구나 싶어요. 사실은 거꾸로예요. 어떤 정보를 어떻게 보여줄지부터 정해야 화면이 자연스럽게 따라와요.
그래서 이번엔 "무엇이 필요한가"를 다섯 층으로 나눠서 정리해볼게요.
1. 글 한 편에 담기는 정보#
블로그의 최소 단위는 글이에요. 글 한 편이 잘 만들어지면 나머지는 그 위에 얹는 거죠.
글 자체에 꼭 들어가야 하는 건 다음 정도예요.
- 제목과 본문 — 너무 당연하지만 가장 공들여야 하는 부분
- 작성일과 수정일 — 기술 글은 시간에 민감해서 "언제 쓴 글인지"가 신뢰도를 좌우해요
- 태그 1~3개 — 너무 많이 붙이면 의미가 흐려져요
- 읽기 시간 — 독자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줘요
- 목차 — 길이가 어느 정도 되는 글에선 필수예요
여기에 표현을 위한 요소가 따라와요.
- 코드 블록 — 언어별 하이라이팅, 줄 번호, 복사 버튼
- 이미지 — 본문 이미지와 OG(Open Graph) 대표 이미지
- 인용문, 표, 콜아웃 박스 — 강조와 비교에 필요해요
OG 이미지는 의외로 중요해요. 링크가 SNS나 메신저로 공유될 때 첫인상을 결정하거든요. 직접 그리지 않더라도 제목과 날짜만 자동으로 그려주는 OG 생성기를 붙여두면 글이 어디로 가든 일관된 모습으로 보여요.
2. 글을 찾게 만드는 정보#
좋은 글이 있어도 독자가 도착할 수 없으면 의미가 없어요. 블로그는 글을 찾는 길도 함께 제공해야 해요.
도착 경로는 크게 네 갈래예요.
- 홈(최신 글 목록) — 가장 자주 들어오는 입구
- 태그 페이지 — 같은 주제 글을 모아서 보여주는 곳
- 시리즈 — 여러 편으로 이어지는 깊은 글들의 묶음
- 검색 — 키워드로 직접 찾고 싶을 때
여기서 자주 잊는 게 RSS예요. 요즘 RSS가 끝났다고들 하지만, 기술 블로그 독자 중엔 여전히 피드 리더로 읽는 사람이 많아요. 정적 사이트에서 RSS XML 하나 만들어두는 건 비용이 거의 없는데 효과는 꽤 커요.
시리즈는 "여러 편으로 쓸 생각이 있는 글"이 3개 이상 쌓였을 때 만들어요. 처음부터 시리즈를 설계하면 부담돼서 글을 못 써요.
3.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정보#
블로그는 한 번 보고 떠나면 끝이 아니에요. 좋아하는 독자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글쓰기가 지속돼요.
가장 강력한 건 뉴스레터예요. RSS가 "독자가 가지러 오는 방식"이라면, 뉴스레터는 "내가 보내는 방식"이거든요. 직접 만들지 않아도 Buttondown이나 ConvertKit 같은 서비스가 무료 구간을 제공해요. 2023년엔 "어떻게 구현하지"가 고민이었는데, 지금은 연결만 하면 돼요.
조금 더 가벼운 장치들도 있어요.
- 관련 글 추천 — 글 하단에 같은 태그나 시리즈의 다음 글을 띄워주기
- 이전 글 / 다음 글 — 시리즈 내 이동을 자연스럽게
- 북마크 가능한 짧은 URL —
/posts/[slug]형태가 검색엔진에도 좋아요
댓글은 의외로 우선순위가 낮아요. GitHub Issues나 Giscus를 붙이는 건 쉽지만, 댓글 없는 블로그도 충분히 잘 굴러가요. 댓글이 안 달리면 그게 더 우울하거든요.
4. 글쓴이를 드러내는 정보#
기술 블로그도 결국 사람을 보여주는 공간이에요. 같은 내용이라도 누가 썼는지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죠.
About 페이지엔 이 정도가 있으면 충분해요.
- 한두 문장 자기소개
-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관심사
- 연락처(이메일, GitHub, LinkedIn 정도)
- 외부 채널 — 유튜브, 뉴스레터, SNS 링크
자기소개를 너무 길게 쓰지 않아도 돼요. 글이 누적되면 글이 곧 소개가 돼요. About은 "지금 이 사람이 뭘 하는지"만 보여줘도 충분해요.
여기에 곁가지 페이지를 더할 수 있어요.
- Books — 읽은 책 목록과 인상 깊었던 구절. 책 한 권을 정리하기 부담스럽다면 22쪽의 한 줄만 남겨도 돼요
- Links — 평소 자주 보는 블로그, 동료들의 글, 영감을 받는 사이트
- Now — nownownow.com 형식의, "요즘 뭐 하는지" 한 페이지
이런 곁가지는 검색 트래픽보단 사람을 위한 페이지예요. 자주 오는 독자 한 명에겐 큰 신호가 돼요.
5. 안 만들어도 되는 것들#
3년 전 메모를 보니 마인드맵 화면을 만들겠다고 적어뒀더라고요. 태그끼리 점과 선으로 연결해서 공부의 흐름을 보여주는 화면이요.
지금 생각하면 그건 블로그가 아니라 별도 프로젝트예요. 글이 50편쯤 쌓이기 전엔 시각화할 거리도 없고, 만들어도 검색으로 찾아온 독자는 안 봐요. 만드는 데 한 달 걸렸을 텐데, 그 시간에 글 다섯 편을 쓰는 게 나아요.
비슷하게 우선순위를 낮춰도 되는 것들이에요.
- 무거운 검색 엔진 — 정적 사이트 검색은 클라이언트에서 fuse.js 정도면 충분해요
- 다크모드 커스터마이즈 — 시스템 설정 따라가게만 해도 돼요
- 댓글 시스템 — 위에서 적은 이유와 같아요
- 방문자 통계 위젯 — Google Analytics나 Plausible 한 줄이면 충분해요
블로그를 망치는 건 글이 없는 것이지, 기능이 부족한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무엇이 필요한가요#
다섯 층을 다시 한 줄로 줄이면 이렇게 돼요.
- 글 한 편이 잘 보이는 구조
- 글을 찾게 해주는 길(목록, 태그, 시리즈, 검색, RSS)
-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장치(뉴스레터, 관련 글)
- 글쓴이를 드러내는 페이지(About, Books, Links)
- 위 네 가지를 위협하지 않는 만큼만의 기능
2023년에 적은 메모에서 빠진 건 우선순위였어요. 무엇을 먼저 만들고, 무엇을 나중으로 미룰지 정하지 않으면 화면 목록만 늘어나거든요.
다시 만든다면 글 한 편에서 시작해서 바깥쪽으로 확장해 나갈 것 같아요. 글이 먼저 있어야, 태그도 시리즈도 뉴스레터도 의미가 생기니까요.
He who fears being conquered is sure of defeat.
— Napoleon Bonaparte


